산행/산행2019년

[2019년 1월 24일] 천등산(안동) 소나무숲길과 봉정사 극락전

김태년 2019. 1. 24. 19:19






 

1. 산 행 지 : 천등산

2. 산행일자 : 2019 1. 24.

3. 산행코스 :  천등사매표소앞 ~ 안부 ~ 상산(520m, 왕복) ~ 큰상산(547m) ~ 관음굴 ~ 수릿재 ~

                  개목산(477m) ~ 천등산(576m) ~ 천등굴 ~ 개목사 ~ 영산암 ~ 봉정사 ~ 명옥대 ~ 천등사매표소앞

4. 산행거리 : 9.05km / 7.80m(tranggle)

5. 산행시간 : 2시간 20분

6. 산행참고 :

7. 교통참고 : 산악회(청주천봉)버스

8. 산행트랙 : 천등산ORUX190124천봉.gpx

9. 사진 및 기타







봉정사 입구 매표소 앞 안동버스 회차장에서 하차



2주차장도 지나고


3주차장안으로 진입




등산로 1코스로 진행






왼쪽으로 가학산, 정면에는 큰상산


큰상산 정상모습




관음굴



오른쪽으로 가학산


개막산 정상, 정상석도 정상표지도 없다.


천등산정상, 정상석은 앞으로 더 진행해야한다.

정상인증사진을 찍고 이리로 되돌아와 천등굴로 진행




천등산정상석, 삼각점


개목사로 직접 내려가지 않고

되돌아 선다.



이 곳 천등굴에서 직접 봉정사로 내려갈 수 있지만

개목사를 가기 위해 되돌아 길도 아닌 길을 따라 진행하여

천등산정상석에서 내려오는 길을 만난다.


개목사(開目寺)


개목사 원통전 ;

개목사는 본래 흥국사로 신문왕 때 의상대사의 제자 능인스님이 천등굴에서 도를 닦다 천녀의 도움으로 도를 깨쳐 큰절을 세웠다. 안동지방의 많은 소경들이 절을 세운 뒤 눈병이 없어져 개목사로 개칭하였다 하고

원통전은 조선세조 3년(1457년)에 건립된 목조건물로 정면 3칸, 측면 1칸 단층 맞배지붕이다.

이정표가 개목사를 보았을 때 왼쪽에 설치되어 있어

개목사를 관람하고 무심코 시멘트포장길로 들어서면 장태리, 광평리로 진행하게 되어

많이 걸어야한다.




봉정사 영산암;

봉정사 영산암은 응진전, 송암당, 우화루, 삼성각 등 몇 개의 건물이 네 면을 울타리처럼 두른 모양으로 폐쇄적인 형상을 띠고 있다. 나한을 모시는 응진전, 산신·독성·칠성신을 함께 봉안한 삼성각, 앞면을 가로지르는 2층 누각형 건물인 우화루, 그 밖에 영화실과 승려들의 수행 및 거처인 송암당, 관심당 등 5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우화루의 낮고 비좁은 누하문을 들어서면 구릉지의 자연적 모습이 그대로 봉정사 영산암의 뜰이 된다. 자연 공간을 내부로 끌어들여 그대로 암자의 분위기를 자연에 동화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불교의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보다는 마치 유가 선비들의 생활 공간 가까이에 만든 정자에 있는 기분이 든다.
봉정사 영산암 외곽은 우화루, 송암당, 관심당, 영화실이 모두 마루로 연결되어 영산암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은 1969년 대대적인 보수 공사 이전의 봉정사의 모습과도 같다. 고금당, 화엄강당, 무량해회의 삼면이 모두 마루로 연결되어 마당에 내려서지 않고 건물 간의 이동을 용이하게 하였는데, 조선조 후반까지의 봉정사 가람 배치는 이와 같이 삼면을 마루로 서로 연결한 특징적 모습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봉정사 영산암봉정사 안의 또 다른 작은 봉정사라 할 수 있다.(펌)


우화루


응진전


송암당





봉정사

682년(신문왕 2) 의상(義湘)이 창건한 절로 알려져 왔으나, 1971년 극락전에서 상량문이 발견됨으로써 672년(문무왕 12) 능인(能仁) 대사가 창건했음이 밝혀졌다. 천등굴에서 수학하던 능인 대사가 도력으로 종이로 봉(鳳)을 만들어 날렸는데, 이 봉이 앉은 곳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창건 후 능인은 이 절에다 화엄강당(華嚴講堂)을 짓고 제자들에게 전법(傳法)하였다 한다.

또 일설에는 능인이 화엄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이 산에 오르니 선녀가 나타나 횃불을 밝혔고, 청마(靑馬)가 앞길을 인도하여 지금의 대웅전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산 이름을 천등산이라 하고, 청마가 앉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절 이름을 봉정사라 하였다고도 한다. 창건 이후의 뚜렷한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참선도량(參禪道場)으로 이름을 떨쳤을 때에는 부속암자가 9개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6·25전쟁 때는 인민군이 머무르면서, 절에 있던 경전과 사지(寺誌) 등을 모두 불태워,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없다. 안동의 읍지인 『영가지(永嘉志)』에, ‘부(府)의 서쪽 30 리에 천등산이 있다.’고 하였으며, 1566년(명종 21) 퇴계이황(李滉)이 시를 지어 절의 동쪽에 있는 낙수대(落水臺)에 붙였다는 기록이 있어 조선시대에서도 계속 존속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00년 2월 대웅전 지붕 보수공사 때 발견된 묵서명을 통해 조선시대 초에 팔만대장경을 보유하였고, 500여 결(結)의 논밭을 지녔으며, 당우도 전체 75칸이나 되었던 대찰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한국을 방문하면서 1999년 4월 21일에 봉정사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현재 이 절에는 부석사의 무량수전(無量壽殿)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알려져 있는 국보 제15호인 봉정사 극락전을 비롯하여, 보물 제55호인 봉정사 대웅전, 보물 제448호인 봉정사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인 봉정사 고금당(古今堂) 등의 지정문화재와 무량해회(無量海會: 僧房)·만세루(萬歲樓)·우화루(雨花樓)·요사채 등 21동의 건물이 있다.

이 밖에도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된 총 높이 3.35m의 삼층석탑이 있고, 경판고(經板庫)에는 대장경 판목이 보관되어 있다. 부속암자로는 퇴락한 영산암(靈山庵)과 오른쪽 골짜기 부근의 지조암(智照庵)이 있다. (펌)





















명옥대


명옥대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사림에서 대학자인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 강도(講道)하던 자리를 기념하여 지은 정자이다. 옛 이름은 낙수대(落水臺)였으나 육사형(陸士衡)의 「초은시(招隱詩)」에 나오는 ‘나는 샘이 명옥을 씻겨 내리네(飛泉漱鳴玉)’라는 구절을 따와 명옥대로 바꾸었다고 한다.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산76번지에 있다.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봉정사(鳳停寺) 어귀의 왼쪽 석간수가 흐르는 계곡의 건너편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명옥대 맞은편에 ‘명옥대(鳴玉臺)’라 새긴 바위가 남아 있다.

명옥대는 1655년(현종 6) 퇴계 이황이 학문을 가르치던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명옥대는 자연석 초석 위에 원형 통재기둥을 세우고 누마루를 설치하였는데 정면 2칸, 측면 2칸의 평면에 계자 난간을 두르고 있으며 사면 모두를 개방하여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 좋게 하였다. 기둥 위에는 주두와 보아지를 놓아서 보를 결구하였다. 종량의 한쪽 끝은 동자주(童子柱) 위에 보아지를 놓아 결구하였고 다른 쪽 끝은 대접받침 위에 보아지를 놓아서 결구하였으며, 그 위에 제형 판대공을 세우고 첨차(檐遮)를 직교시켜 마루대와 장혀를 얹었다. 기둥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 보아서 뒤쪽 2칸은 원래 방이었던 것을 뒤에 지금과 같이 모두 개방된 누마루 형식으로 고친 것으로 보인다. (펌)







천등산ORUX190124천봉.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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